이런 일 저런 생각

고향의 그 겨울 밤

한길재순 2017. 12. 27. 15:30

`앞 뒷산으로 둘러싸인 내 고향 마을은

겨울 오후 4시면 산 그늘이 지고

5시가 조금 지나면 어두운 밤입니다.

초저녁 한 집 두 집 호롱불이 켜지면

좁은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식구들은 오순도순  둘러 앉아 저녁을 먹지요.




동네 사랑방에는 머슴들과 청년들이 들러 앉아 세끼를 꼬고

엊그제 장날 들었던 그 이야기를 또 되풀이 합니다.

우리집 안방에는 제금 나간 형님 형수들로 가득합니다.

밤이 이슥하면 고구마 삶은 것을 나누고

싱건 무 김치를 가져와서 시원하다고 하면서 나누지요.

요즘 같으면 저염 식품 아니라고 물리칠 정도 짭니다.


혼자 사랑방에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몇 번 기침소리를 내고 담뱃대를  두드려 보지만

안방의 웃음소리는 사랑방의 기척을 듣지 못합니다.



밤이 더 깊어지면 집집마다 켜진 호롱불도 하나 둘 꺼집니다

그러면 마을은 죽은 듯 고요합니다.

갑자기 개짖는 소리 요란합니다.

"해삼 사시오. 해삼이요."

사랑방 아버지가 해삼을 삽니다.

그 해삼은 어른만 먹는 음식인줄 알았습니다.

그 추운 날 십리나 떨어진 골짜기 마을까지

해삼 장사가 오는 겨울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안채도 비었고

사랑채는 헐어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싱건 김치 고구마 나누던 형님들도 

사랑을 지키며 해삼 사 드시던 아버님도

 모두 천국에서 지내지요.

나 혼자 아직도 여기 진해에 살면서

그 때 그 고향 밤을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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