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뒷산으로 둘러싸인 내 고향 마을은
겨울 오후 4시면 산 그늘이 지고
5시가 조금 지나면 어두운 밤입니다.
초저녁 한 집 두 집 호롱불이 켜지면
좁은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식구들은 오순도순 둘러 앉아 저녁을 먹지요.
동네 사랑방에는 머슴들과 청년들이 들러 앉아 세끼를 꼬고
엊그제 장날 들었던 그 이야기를 또 되풀이 합니다.
우리집 안방에는 제금 나간 형님 형수들로 가득합니다.
밤이 이슥하면 고구마 삶은 것을 나누고
싱건 무 김치를 가져와서 시원하다고 하면서 나누지요.
요즘 같으면 저염 식품 아니라고 물리칠 정도 짭니다.
혼자 사랑방에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몇 번 기침소리를 내고 담뱃대를 두드려 보지만
안방의 웃음소리는 사랑방의 기척을 듣지 못합니다.
밤이 더 깊어지면 집집마다 켜진 호롱불도 하나 둘 꺼집니다
그러면 마을은 죽은 듯 고요합니다.
갑자기 개짖는 소리 요란합니다.
"해삼 사시오. 해삼이요."
사랑방 아버지가 해삼을 삽니다.
그 해삼은 어른만 먹는 음식인줄 알았습니다.
그 추운 날 십리나 떨어진 골짜기 마을까지
해삼 장사가 오는 겨울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안채도 비었고
사랑채는 헐어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싱건 김치 고구마 나누던 형님들도
사랑을 지키며 해삼 사 드시던 아버님도
모두 천국에서 지내지요.
나 혼자 아직도 여기 진해에 살면서
그 때 그 고향 밤을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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