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 저런 생각

사범학교 2학년 시절

한길재순 2017. 4. 15. 16:07

1학년을 동대신동 언덕 판자촌에서 지내다가 2학년 때에는

서대신동파출소 뒷집으로 옮겼다.

수산센터 하감독님 댁 3간 함석집 부엌방이 내 보금자리였다.

그 댁에는 나와 동학년인 부산여상 다니던 따님이 있었으니

서로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다정하게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은 것은 나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었으므로 내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녀도 시골 출신 자취생에게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내방 맞은 편 앞집에는 부산여고 다니던 여학생 공부방이

있어서 항상 몸가짐을 조심해야 했다.

그녀는 내 재종 여동생과 동급생이었다.

사범학교에 입학한 후로 나는 마산여고 다니던 초.중학교

동기생이었던 지금의 내자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우정에서 사랑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겁도 없이 마산여고로

편지를 보냈으나 그 다음부터는  마산 후배네 집 주소로 보냈다.

1 주일에 한 장 씩은 보냈으니까 그 때 우표값만 해도

적지 않은 돈이었으리라.



2학년 때에 내 보호자였던 형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였다. 

 그 때부터 나도 학비를

걱정해야 했으므로 가정교사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대신동 지인의 외동 아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공설 운동징 뒤에 살던 부산일보

기자댁의 아이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 당시 사범학교 학생들은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면서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으므로  가정교사

일을 많이 하였다.

자취방 방세는 형님이 부담하고 쌀과 반찬은 고향 집에서 가져다 먹었다.

단팥죽을 너무 좋아하여 길 건너 단팥죽 집에서 밥 대신 단팥죽을 

사 먹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내 별명이 '단팥죽 총각'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아침밥을 하기 싫으면 등굣길에 동대신동 시장에서 국수를

사 먹는 날도 더러 있었다.

앞으로 교사가 될 사범학교 학생으로 공부 뿐 아니라 행동에도

 늘 모범적안 학생이었다.



그런 걸 보아내지 못하는 동급생도 있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아무 이유 없이 그 친구에게

불려가서 구타를 당할 직전에 누군가가 태권도를 하던

 다른 친구에게 연락을 하여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사범학교 학생으로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는 그 친구

교직에 조금 있다가 보통고시에 합격하여 수산청 고위

공무원으로 퇴임히였다.

수안보에서 전국 동기회를 할 때에 그 친구가 나에게

늦었지만 사과를 하였었다.

그 자신을 그런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른 친구에게 그 사실을 듣고  그 때 정말

미안했었다고 사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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