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 저런 생각

설날 차례 이야기

한길재순 2021. 2. 14. 09:58

설날 아침엔 집집마다 부산했습니다.

형님 형수들은 아침 일찍부터 부모님에게 떡국 세배를 드린 다음, 차례를 지낼 준비를

해야 했으니까요.

 

식전에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마치고 나면 차례를 드렸지요. 큰 집에서 먼저 드리고,

그 다음은 우리집, 큰 형님댁, 사촌 형님댁 순으로 모시고 나면 10시가 넘은 시간이 되지요.

어느 해는 큰집 첫번째 차례를 드린 다음에 제삿밥을 나누기도 하고, 그 다음해는

큰집에서는 음복만 하고 두번째 집에서 제삿밥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정월 초이튿날은 마을 어른들 댁으로 세배를 다녔습니다. 대개 50대 중반을 기준으로

연세가 높은 어른들에게  세배를 한 것 같습니다.(지금ㄴ 50대 중반은 노인 축에도

들지 못하지만 그 때는 노인  대접을 받았지요).

그 때에는 세배 후에 떡이나 강정 같은 것을 주셨어요. 어른들의 세배에는 술과 안주도

나왔던 것 같습니다.

 오늘이 정월 초사흘날이네요.  초사흘날 쯤 되면 형수들 중에 시집온지 얼마 안된 형수는

친정으로 갔었고, 시집간 누나들 중에 역시 오래 되지 않은 누님들은 친정인 우리집으로

왔습니다. 형수님이나 누님들이 오고 가지 않아도 형님들은 처가에, 자형들은 처가인

우리집으로 오셨지요. 이 때에 자형들에게서 세뱃돈을 받기도 하였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나서는 나도 형과 같이 30리길을 걸어서 외가에 가기도 하고,

20리길 되는 고모님댁이나 누님댁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런 풍속이 거의 다 없어졌지요.

추석과 마찬가지로 설 명절도 하루나 길어도 이틀에 끝나고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

명절이 끝나지요. 

요즈음은 조카들이나 우리 아이들도 큰집이나 작은집에 잘 가지 않습니다.

 

지금은 부모님이나 형님들 제사를 모두 부산에 사는 조카들이 모십니다.

70세까지는 부산형님과 내가 참례를 했지만 나이 들어 자동차로 움직이기도 불편하고

해서 형님과 나는 빠지고 조카들끼리 제사를 모십니다.

아침 일찍 송도에 사는 장조카집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단의 조카네, 영도 사는 조카네,

마지막으로 용호동 조카네 집까지, 설날 오전 내내 이집 저집으로 순회하며 차례를

지내고 나면 정오가 넘어야 끝이 난다고 하네요.

 

제사도 집집마다 다 있고, 교통도 불편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롭지요.

그래서 몇 년 전 조카들이 의논을 하여 명절 제사는 각자 집에서 모시고, 기제사에만

함께 모이자고 했다네요.

.

몇년 전 어느 조카가 나보고 그렇게 하니까 객지에 사는 사촌끼리도 거의 만나지 못한다고

예전처럼 하도록 말씀을 좀 해달라고 했지만, 차례의 주체인 조카들끼리 의논한 것을 

어떻게 간섭하겠나 하고 말았지요.

지금도 먼 옛날 시골에서 멋도 모르고 제사를 지내는데 따라다니며 밤이나 대추를 얻어

먹던 일이나 세뱃돈을 받던 그런 추억들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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