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 저런 생각

천락골 고향 마을

한길재순 2019. 10. 16. 19:11

벼르다 벼르다 찾은 내 고향

의령군 봉수면 천락마을

천락골이라 불리는 내 고향 산골엔

아랫덤들,웃덤들, 아래천락. 웃천락(지경마을)

새터 (하권). 중머리(중권), 상머리(상권) 마을들이

산기슭에 오밀조밀 모여 있다.

아래 위 덤들은 천락골 입구에 있고

신반에서 가까운 마을이라 천락골마을이라 하면

그들은 억울하게 생각하리라.

신반을 벗어니 천락골 입구에서 바라본 천락골 .

첫 마을이 아래덤들이다. 이 마을에 내 초등학교 친구 둘이 있었다.

여자 친구는 수년 전 시집 마을인 궁류 평촌에서 홍수 때에 참변을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나자 친구는 서울에 산다는 소식 들은 지 꽤 오래 되었다.

지금은 포장된 직선 도로이지만 예전에는 아래 덤들에서 들 가운데로 난

달구지가 다니던 길이었다.

왼쪽의 축사도 논이었고, 오른쪽 산 아래 마을이 웃덤들이다.

거기 김 ㅇㅇ란 아이가 살았다. 내가 1학년 담을 했던 반 아이었는데

공부에 관심이 없어 한글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아무리 관심을 가지고 개별 지도를 해도 효과가 없었다.

이 아이는 시험지에 김 순철(가명) 이라 쓸 때도 있고,

순김철이라고 쓰기도 하고, 철김순이러고도 썼다.

 세 글자가 제 일인줄은 아는데, 성이 어느 글자인지 이름이 어느 글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그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 번 만나고 싶어도 꾹 참고 지나 다닌다. 혹시 자존심 상할까 싶어서.

앞의 마을이 내 고향 아래천락마을이고 위 마을이 웃천락마을이다.

크게 보이는 축사는 옛날에는 없었다.

여기서 초.중학교가 있는 신반이  가까운 십리쯤 된다.

지금은 승용차로 5분 정도 걸리는 곳이지만

옛날엔 모두 걸어다녔다.

학셍들도 걸었고, 시장 가는 사람도 걸었고, 짐을 지고 가는

 사람도 걸어다녔다.

길도 지금처럼 들 가운데 일직선 도로가 아니고 산 아래로

 난 길과 들길도 구불구불한 길이었다.

어려서 병약했던 나는 정년에 다닐 수가 없어서

내 막내여동생과 같이 입학을 하였다.

그러니까 정년에 등어간 친구들보다 2년 정도 늦은 셈이다.

큰 둑이 천락저수지. 좁을 골짝을 막어서 만든 상당히 규모가 큰 저수지라

천락골 뿐만 아니라 신반 큰들까지 농업용수로 충분하다.


진해로 돌아오다가 뒤돌아 본 고향마을.

저수지 둑에서 바라본 아래 위 천락마을과 들 풍경.

천락 저수지. 수년전 부산 사는 형님과 여기 저수지 둑에

주차를 하고 저수지 구경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형님이 타고 온 승용차가 상당히 비싼 외제 승용차라

이 골짝을 찾아올 자동차로서는

무언가 어울리지 않아서 묻는다는 것이었다.

부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진해 사는 동생과 같이

고향을 방문하는 길이었다고.

부산사하경찰서 명예경찰서장도 지냈고 기사는

사하경찰서에서 경위로 퇴임한 사람이라고 하니

거수경례를 하고 인사를 하고 지나갔던

에피소드가 있는 저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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