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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사계

한길재순 2017. 10. 2. 18:33

인생이 70 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시편 기자는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생활 환경이 개선되고 의술이 발달하여 흔히 인생100 세 시대라고들 한다.

인생을 100년으로 보고 그 100년을 4등분하여 4계절로 나누어 '인생 4계'

라고 말한다.

나면서부터 25세 까지를 봄이라고 하고, 26세에서 50세까지를 여름,

51세에서부터 75세까지를가을이라고 하고, 76세에서부터 100세까지를

겨울이라고 하는 것이다.

1939년 2월 14일 생이니까 지금 만 78세가 지나 79세에 접어든 내 인생의

계절은 어쩔 수 없이 겨울에 해당 된다. 인생의 추수를 다 한 후에 하나님의 나라로 가기 위한 준비 기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생로병사는 누구나 겪어야 할 인생의 4고(苦)이고 봄, 여름, 가을, 겨울

4철의 변화도 누구도 변화를  막거나 거꾸로 돌릴 수 없다.

나의 인생 4계는 어떠한가?  인생의 마지막 계절인 겨울에 서서 되돌아본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 뜻대로 온 게 아니다. 내 부모님의 사랑의

결과로 태어났고, 더 크게 보면 하나님의 섭리로 이 세상에 온 것이다.

내가 태어날 때는 일제강점기이다. 해방이 되기 6년 전에  경남 의령군 봉수면 천락마을 소작농이던 부모님의 12번 째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해방 후에는  농지개혁으로 자작농이 되고 위로 여러 형님들이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나무를 팔아 소득을 높여서  나는 보릿고개 같은 걸 모르고 자랐으니 그래도 다행한 편이었다.

해방 후인 1948년에 부림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신반중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에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1959년 5월에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아

내 모교인 부림초등학교에서 9년간 근무하였다.

이 기간 중에 군복무를 마치고,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24세 때인 1963년12월에  결혼을 하여 두 딸을 낳았다. 인생의 봄인 이 시기에 초.중.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내 꿈이었던 교사가 되어  봄날처럼 정열적으로  인생을 살았다. 참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삶을 누렸다.

인생의 여름인 단계에서 나는 고향을 떠나 진해시로 임지를 옮겼다. 진해에서

 경화초등, 대야초등 두 곳의 학교에서 30대 중견 교사로 부지런히 연구활동을 하고, 방송통신대학에 진학하여 대학교육을 마쳤으며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교감자격시험에 합격하여 40 대 초반에 거제 학산초등학교 교감으로 승진하고, 장평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 중이던 1984년 9월에 진해시교육청 장학사로 전직하였다.

인생의 가을에 들어서서는 경상남도 교육연구언 연구사, 경상남도 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하면서 교육전문직으로서 경남교육의 발전에 나름대로 기여하였다.

만 56세에 교장으로 승진하여 진해대야초등학교와 진해경화초등학교에서 학교 교육환경 개선에 마지막 교직 정열을 쏟았다.

정년이 3년 단축 됨에 따라 만 63세 때인 2001년 8월말에 명예로운 정년퇴임

 (홍조근정훈장)을 하였다.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면서 정년퇴직을 하고 보니 인생을 다 산 것 같이 쓸쓸함을 느꼈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때가 한창 때인 것 같기도 하다.

퇴임 후에 998산우회에 가입하여 전국의 명산을 두루 산행을 하고 외국 여행도 함께 하면서 건강하고 즐겁게 지냈다.

현직에 있을 보다 퇴임한 후에 더 건강해졌다고하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썩 좋았다. 현직에 있을 때에도 독서와 글쓰기를 많이 하였지만, 퇴임 후에도

게속하여 1년에 120권의 신간도서를 읽는다.

회갑되던 해에 회고록과 수상집을 발간하고 퇴임식 때에도 수상집을 발간하였으며, 고희 기념 문집도 발간하여 친지들과 나누어 보는 재미도 맛보았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의 가을 기간에 나름대로 거둔 과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내 인생의 겨울에 접어든지 2년 차이다. 집에서 세는 나이로는 80이니

나도 노인임에 틀림 없다.  100세를 누릴려면 아직도 20년이나 남긴 하지만

내 건강 상태로 보아 그렇게 긴 여생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싶다.

2년 전부터 '재생불량빈혈'이라는 난치병 환자로 등록하여 치료를 받고 있다. 한 동안 무척 힘들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지만 언제 무슨 변화가 올지 나도 모른다.

병원에서 주는 비타민류의 약과 내자가 만들어 주는 비트즙을 상복하고,

 한방약도 먹으며 홍삼이나 화분으로 면역력을 높이고  있다. 날마다 좋다는 음식이나 약을 공급해 주는 내자에게 늘 감사한다.

옛날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겨울엔 따뜻한 방에서 쉬면서 봄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에도 비닐하우스 시설과 난방장치가 좋아서 겨울에도 온갖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우리 인생의 겨울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

90세 송해도 아직 전국 노래자랑 사회를 보고, 98세 김형석 교수는 지금도 하루 1시간씩 서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강원도 철원의  어느 노인도 99세인데도 트럭을 운전하고  논이나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그렇게 횔동하지는 못하지만 나도 아침이면 텃밭에 나가 채소를 가꾸고, 낮에는 가까운 산과 들로 나가 사진을 촬영하거나 파크골프도 치고 있다.

매일 80여명의 친구들과 11곳의 전국 카페에  사진과 글을  올리고 정보를 교환한다.

한문공부를 하고 한글 서예를 쓰며  성경 말씀을 화선지에 쓰기도 한다.

금년에는 부산사범 12회 동기회 회징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날마다 조선일보를 읽고 신문에 게재되는 영어와 일본어 한자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글을 쓰면 글솜씨도 늘어난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되글 기대하고 있다.

가끔 진해교육락회와 마을 경로당에 나가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새벽에 일어나면 "오늘도 새 날과 건강을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

 밤이 되면, 오늘  하루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신 하나님께

사 기도를 드리며" 잠자리에 든다.

내 생의 마지막 계절인 겨울을 맞이하였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믿으며 감사하면서 남은 인생 즐겁고 보람있게 살아가려고 한다. 마지막

그 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