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2월 14일 밤. 면 소재지에서 십리쯤 떨어져 있는 한적한
산골 마을,
소작농을 하는 한 농가의 삼간집 큰방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하도 잦은 출산이라 특별한 일도 아니고, 특별히 기뻐하는 이도 없는
아기는 11남매의 열번째요 여섯 남형제의 막내였다.
그 때는 출산 조절도 할줄 몰랐었고, 산아제한도 없는 시기였으므로
임신하는 대로 낳는 시대였다.
지금 같았으면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없는 차례였으리라.
그리고 그 당시엔 의료시설도 없을 때라 영유아때에
병으로 사망하는 아이들이 참 많았을 때였으나
우리집 아이들은 12명 중에 한 아이만 죽고 모두 자라났다고 한다.
타고난 생명력이 강한 아이들이었는지,
우리 어머님이 특별히 육아를 잘 했는지.
( 큰누님과 큰형님은 돌아가신 큰어머님 소생이다).
어렵고 가난한 시대였고 소학교도 다니지 못한
형님들이 모두 장성하여 농삿일을
거들고 산에 나무를 하여 팔았기 때문에 해마다 논밭을 사
살림이 일어나는 그런 집이었다.
비교적 늦은 출산이어서 그런지 모르나 어려서부터 약체로 태어났으므로
적령이 되었어도 십리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닐 체력이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2년 뒤에 태어난 내 막내 여동생과 같은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유아기에 하도 약했고, 동네 반무당 할머니께서 내 어머니에게
"이 아이는 열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니 옷도 험하게 입히지 말고
먹는 것도 잘 먹여야 다음에(일찍 하늘나라로 가더라도)
한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결혼 후에 집사람이 어머니에게 "어렸을 때 약도 좀 먹여서 튼튼하게
기르지 않으셨느냐?" 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께서는 "그 때는 하도 자녀들이
많아서 아파도 방구석에 눕혀 놓고 한 놈이라도 죽지 않는가?
하던 때 였는데
보약이 무슨 말이냐?" 고 하셨다고 한다.
열살을 넘기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유약했던 아이가 내일 모레 필순을
바라보게 되었으니 참으로 오래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