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추석 명절입니다.
오늘은 추석 명절
몸은 타향에 있지만
마음은 내 고향 마을 천락골에.
내 나이 팔순을 넘었지만
마음은 여나무살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고향 마을 전경)
벼가 누렇게 익어가면
먼저 익은 논에서 벼 몇단을 베어와
햅쌀을 만든 형님과 형수님.
추석에 입을 새 옷과 신발은
지난 장날 사 두었고.
제삿장도 넉넉하게 봐 두었지요.
감은 볼이 조금 붙었으나 떫은 감이라
미지근한 소금물에 담아서 삭이고
올밤은 벌써 따 두었지요.
송편과 시루떡 전은 어제 형수님들의
부지런한 손으로 다 만들었고요.
추석날 아침에 새 옷 입고
큰집으로 달려갑니다.
어른들 뒤에서 같이 절을 하고
제삿밥을 먹으니 꿀맛이입니다.
두 번째는 사촌형님 제사로,
다음은 큰형님댁에서 큰형수님 제사를,
이렇게 돌아가면서 차례를 올리고 나면
11시 경이 돠었네요.
점심은 별도로 먹지 않아도 배가 불러요.
동네 형님들 따라 '보름'이나 '배곡재'로 가서
그네를 맵다.
그네는 동네 쳐녀들 차지이지만
설치는 총각들이 하지요.
아이들은 딱지치기나 제기차기를 하고 놀고,
어른들은 오후기 되면 밭으로 나가
익은 콩을 베어 오기도 하고
논에 나가서 둘러보기도 합니다.
부인들은 밀린 빨래를 하러 시냇가로 나가고.
추석 명절은 하루 명절이지요.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엔
떡이나 전을 간수하기가 아려웠습니다.
저녁 나절이면 음식들을 쪄 놓아야 그 다음날까지 가지만,
날씨가 더우면 시어져서 못 먹게 되지요.
과일도 지금처럼 풍부하지 않아서 삭인 감이나 밤 정도이고
사과나 배는 제삿상에 놓은 것뿐이지요.
70년 전 일이지만 그 때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고 할 정도로,
추석 명절엔 배부르게 먹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날마다 풍족하게 입고 먹고 하니까
날마다 추석이고 설날이지요.
참 좋은 시절에 살아서 행복합니다. 우리는.
그래도 불만과 불평 속에 사는 사람들도 있고,
흙수저니 오포세대니 하면서
젊은이들이 움츠리면서 기가 죽어 있다는군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지요.
기대 수준을 저금 더 낮추고
땀흘려 일하다 보면 잘살게 되지 않을까요.
문제인 정부 들어선 후 정의롭고,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가
되리라 기대한 젊은이들이 역시나로 생각하고
오히려 기회가 더 줄고 힘들다고 불평들입니다.
그래도 대통령과 여당 사람들은 지금이
정의와 공정과 공평한 사회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러한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좀 나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추석 명절입니다. 조국 이야기 그만 하시고
비전과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