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공지영 장편소설 '해리'
가끔 생각한다. 내가 고발하고 싶었던 그들을 위해 기도할
자신이 없었다면 불의를
고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마저 분노와 증오에 휩쓸려 간다면 차라리 어떤
것이라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은 확실하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 이 날씨, 이 풍경과 더불어
단순하게 행복해지는 걸
선택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왜냐하면, 오늘 나는 여기 있고, 이게 전부니까. 어쩌면
인간이 쌓은 언어들,이념들
혹은 평가들은 그저 허구에 불과했다. 오히려 내게는
저 티없는 하늘, 한없이
투명한 블루의 바람, 물 위로 힘차게 깃을 치며
먹이를 물고 날아오르는 새들,
누가 뭐래도 꿋꿋이 피어나는 작은 들꽃들, 평생 다이어트를
해본 일 없는 순박한
여자들, 순하게 그늘진 골목길들, 한 손에 읽던 책을
쥐고 개와 함께 강변을 걷는 할머니...
내게는 이런 것들이 더 삶에 가까웠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들을, 그것이 내 맘에 들든
그렇지 않든 감사하고
감사하리라 다짐했던 것이다.(작가 후기에서)
작가는 카톨릭 교인이다.
종교를 둘러리도 하면서 장애인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비양심적인 주인공과 그를 비호하는 나쁜 신부와 수녀.
경찰과 검찰, 소위 진보라고 외치는정치인들의
비위와 성적인 문란 행위 등을 파헤치는 소설이다.
카톨릭 교회와 그 거대한 조직 속에
일어나는 바르지 못한 일들과 용서하기 못할 성직자들을
고발하는 내용의 이 소설은 모두 허구라고 하면서도,
취재에 협조해 준 분들과 격려해 주신 신부님들이 있다는
작가의 후기가 완잔히 근거 없는 허구는 아님을 시사해준다.
어디 카톨릭교회만 그렇겠는가?
오늘날 소위 대형교회와 유명하다고 이름나 있는 신교의 교회와
교역자들에게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노출되어 우리를 실망시키고,
불교계의 중심인 조교종에서도 온갖 모순과 불의가
고발되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 일반인들은 실망한다.
비록 종교라고 하지만 역시 사람이 모인 집단이니 그런 비위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점점 자정이 될 것이라고 기대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