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길을 양보하여도
아주 먼 옛날 일이다. 산골마을 '셈베기들 '에는 논 서마지가 있었고 그 논 위에 작은 밭이
하나 있었다. 그 밭 위에는 정씨 성을 가진 분의 큰 밭이 있었다. 두 밭 사이에 닥나무
두어그루가 그루가 있었다. 어느 가을에 그 닥나무를 윗밭 정씨 동생이 베었던 것이다.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지만 소유 개념 때문에 시비가 되었던 모양이다.
정씨 집안엔 형제가 있었고 우리 집엔 6 형제가 덩실덩실하였다. 감정싸움이 몸싸움으로
변해 갑자기 수세에 몰린 정씨쪽에서 낫을 휘두르는 바람에 내 형님 한 분의 몸에 작은
상처를 입은 일이 있었다.
어린 내 소견으로도 별 것 아니 닥나무 몇 그루 때문에 어른 들이 싸우는 것이 목 마땅해
한 일 있다.
소학에 있는 말이다. '終身讓路 不枉百步 終身讓畔不失一段' (남에게 평생 길을 양보하여도
백보를 굽히지 않을 것이요, 한 평생 빝둑을 양보하여도 일 단보를 잃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옛날 어렸을 적의 .닥나무 사건'을 떠 올린다.
평생 닥나무를 양보해도 금액으로 계산하면 그렇게 큰 돈이 아니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창원. 마산과 진해가 통합되었을 적 일이다. 교육삼락회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도교육삼락회장과 이전 대로 세 지역의 삼락회를 그대로 두고 운영해도 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서 감정이 상하기까지 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어느 글에 소학에 있는 위 글을 인용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도회장은 부산사범 한 해 후배였다. 어느날 전화가 왔다.
"선배님 그 글 나 보라고 쓴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당신 충고하려고 쓴 건 아니고, 사자소학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아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소개한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속으로는 그런 좋은 글을 읽으면서 자기 고집을 내려 놓을 수도
있을 것인데 어찌 나 한테 항의성 전화를 하는가 싶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별 것 아닌일에도 서로 양보하지 않고 다툴 때가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위의 사자소학에 나오는 말을 되새겨 보면 젛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