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 저런 생각

세번째 학교 --진해대야초등학교

한길재순 2017. 7. 3. 10:50

대야초등학교에서는 첫 해 학기 도중에 6학년을 담임하여

졸업시킨 다음에는 

 연구 업무를 담당하여 늘 2학년 담임을 하였지요.

어느 해는 1학년 담임을 했는데 학기초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숫기도 없는 사람이 학년초 젊은 엄마들이

계속 주시하는 가운데 수업을 한다는 게 너무 힘들고

아이와 아이 엄마를 연결시켜 상담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저학년 담임을 하니 자연히 학부모들과 가까이 지내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김영란법에 걸릴 일들도 많았지요.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기도 하고 선물도 받기도 하고요.

그러나 나는 양심상 학부모들에게 부담을 주는 요구는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냉장고가 귀하던 그 시절, 오후에

엄마들에게 커피나 찬 음료를 은근히 요구하는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제발 그러지 말라고 권고하고

그런 자리에는 아예 가지 않았습니다. 까다로운 주임이라고

수근대는 소리를 들어도 나는 교사의 체면을 더 중시하였지요.



대야초등학교에서 주임교사 임명을 받고 연구학교 업무를 담당하였습니다.

교육부지정 시청각교육 연구학교와 국사교육연구학교 업무를

맡아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습니다.

현장교육연구논문도 처음으로 시작하여 3년 동안 교감 연수에

필요한 만점을 받았고 연구학교 담당교사 점수도 다 체웠지요.

그래서 벽지점수나 특수학급담당점수, 일반표창 점수 없이도

교감자격시험 대상에 선발되었습니다.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한 덕에 2년 앞당겨 교감자격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3배수가 응시한 시험에서 10위 안에 들었습니다.

일반 행정직 사무관 시험과 같이 어려운 관문이었습니다.

                                                                   

1978년 연말에 교감자격을 받고 그 다음 해에 교감 승진을 바라보는 희망에

들떠 있었는데, 1979년 1월 9일 숙직을 하던 날.

숙직실에서 여러 사람이 저녁내기 화투를 치다

감사원감사반에 발각되었습니다.

"당직실에서 움주 도박을 한 사실을 확인하라"고 하여 감사원

직원과 실랑이를했습니다.

그날 당직인 나는 술도 안 먹었고 화투도

 안 쳤지만 숙직실에서 그런 일을 하도록 방치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했습니다.

교감 승진의 꿈이 좌절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지요.

 그날 화투놀이를 한 직원의 생질서가 감사원 직원으로 타도에

당직감사를 나가 있다는 정보를 알고는 연락이 되어 그 무시무시한 감사반

감사 결과 처벌을 받지 않고 경미한 사안이라고 없던 것으로 처리되었습니다.


그해 교감 승진 서열에 들어가긴했으나 연구실적은 충분했지만,

 도서벽지 근무 실적이나 특수학급 근무 실적, 장관 표창 같은

부가 점수가 모자라  결국 교감 승진 발령을 받지 못하고

진해 근무기간이 넘어서 교사 신분으로 함안군으로  전출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