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 저런 생각

두 번째 학교 --진해경화초등학교,

한길재순 2017. 7. 1. 13:48

1968년 7월 1일 . 중간 발령으로 진해경화초등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발령을 받고 여름방학 때에 이사하기로 하고 교무선생님과 함께 지내면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안정한 생활을 하다 보니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7월 중순경에 갑자기 이사를 하였습니다.

바로 학교 뒤에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두 분 형님께서 이사를

해 주셨습니다.


4학년 1반 담임이었습니다. 개구장이 남학생 60여명. 고무나무 화분이 부서져서  교실 구석에 있었는데 그 걸 새 화분에 심어서 가꾸었습니다.

지금 우리 집에 있는

47년 된 고무나무가 그 때의 그 고무나무입니다.

그 당시에는  방과후 집에서 과외를 했습니다.

10여명을 가르쳐 생활비에 보태 쓰던 때였습니다.

                                  

                                 

1년 후에 고향에서 모아둔 100만원으로 집을 샀습니다.

대지가 70평인 헌 집이었습니다.

고향에서 둘이서 맞벌이를 하여 모은 돈 100만원은 제법

큰 돈이었지요.

 집사람이 출근을 할 때에 처음에는 식모를 데리고 있다가

나중에는 고향 어머니와 형수님댁에 맡기기도 하였습니다.



경화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방송통신대학 초등교육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마지막 중학교 입시 때에 내 반 아이가 진해여중에 수석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에 정신 이상증세로 빛을 보지 못하고 불행한

인생을  살아서 마음 이팠습니다.

입시가 없을 때에도 6학년을 담임하여 졸업을 시켰습니다. 고향 학교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에서도 아이들에게 서예지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도 예능경진대회 한글서예는  늘 내가 가르친 아이가 출전을 하였습니다.

내 큰딸도 서예 대표로 도 대회에 출전을 하고요.

마지막 해 5학년 여학생반을 담임하면서 어려운 집 아이들에게 교내 페지

수집활동을 하여 저축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해는 도지정 자전거타기 연구 학교 담당을 하여 추진하다가 중

간 발령이 나서  시내 대야초등학교로 옮겨 갔습니다.



경화에 근무할 때에 주임교사 제도가 생겼습니다.

나는 주임교사 임명을 받지 못하고 일반 교사로만 근무하였습니다.

연구논문을 발표하여 상장을 받고 표창도 받았으나

일반 표창은 교육감 표창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여러번 추천을 하였으나 교육청에서

늘 탈락을 한 셈입니다.

표창 실적이 모자랐는지 다른 요인이

부족했는지....